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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검색 " 막걸리"에 대한 통합 검색 내용이 5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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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
이대형 지음 / 19,800원 / 시대의창   이대형의 전통주 인문학 -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   우리 술 전문가 이대형 박사의 시대별 역사와 문화를 망라한 우리 술에 대한 고찰을 펴낸 책이 나왔다. 술자리는 늘 즐겁다. 친구, 지인과 술을 마시면서 내가 알고 있는 술 상식을 뽐내는 것도 술자리의 묘미다. 이 책에서는 본격적으로 책을 읽기 전 술자리에서 넓고 얕은 지식을 자랑할 수 있도록 간단한 용어 해설로 페이지를 열었다. 책 중간중간 내용에 맞게 와인, 위스키, 맥주, 막걸리, 소주, 과하주, 누룩, 청주(사케), 입국, 전통주 칵테일의 제조 과정을 참고를 통해 알려준다. 우리 술을 즐기는 사람이라면 한 번 읽어두면 평생 즐겁게 즐길 안주거리로 술이야기를 건질 수 있을 것이다. 이름마저 빼앗긴 우리 술이 향토술, 민속주를 거쳐 전통주가 되기까지 이 책은 서양의 코스 요리를 즐기거나 와인을 마시는 우리 조상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쇄국 정책의 벽을 뚫고 들어온 외국 술과 그에 따른 세칙, 원조 나라에 청주와 고량주를 수출한 조선의 술, 술의 도시 한양의 풍경과 형태별로 나뉜 각종 술집 등 흥미로운 사건과 아픈 역사가 인문학을 토대로 적절히 배합되어 있다. 고려를 지나 조선과 구한말의 우리 술에 대한 역사와 문화를 아우르고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억압과 핍박으로 얼룩진 우리의 삶만큼 우리 술도 고난과 역경을 거치며 다양한 변화를 가져왔다. 알수록 궁금해지고 볼수록 만들어보고 싶은 《술자리보다 재미있는 우리 술 이야기》에 흠뻑 빠져보자. 조선의 한양, 일제 강점기의 마산과 군산 - 술의 도시 한양, 조선에 탁주 빚는 사람만 삼십만 명  조선의 한양은 술의 도시였다. 한양의 술집을 묘사하는 특징은 주등이다. 영조 때는 상소문에 ‘술집마다 술 빚는 양이 거의 백 석에 이르고, 주막 앞에 걸린 주등이 대궐 지척까지 퍼져 있을 뿐 아니라, 돈벌이가 좋아 많은 사람이 술집에 매달린다’는 양조의 병폐를 보고할 정도였다. 이익은 《성호사설》에서 한양 큰 거리의 상점 가운데 절반이 술집임을 지적하며 술집은 한양 어디를 가든 마주치는 하나의 풍경이라고 했다. 술의 과잉 소비로 양조용 쌀이 너무 많이 소진되어 쌀값이 뛰고 덩달아 물가도 오를 정도였다. 지금처럼 맥주나 다른 술들이 쉽게 유통되거나 알려져 소비되는 시대는 아니었지만 1915년의 《매일신보》 기사에는 ‘조선서 빚는 술이 얼마, 탁주 빚는 자가 삼십만’이라는 내용이 있다. 당시 많은 사람이 막걸리를 마셨다는 것이고 또한 막걸리를 제조하는 사람만 31만 명이라니 엄청난 수인 것이다. 당시 인구를 1699만 명으로 추정하면 인구의 1.8퍼센트가 술을 만들었다는 계산이 나오는데 이것도 성인을 기준으로 하면 술 만드는 데 관여한 사람은 훨씬 많다고 할 수 있다. 술의 도시 마산과 군산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마산과 군산은 청주(사케)의 도시였다. 마산은 쌀 수탈의 거점 도시로 일본인의 자료에 따르면 꽃의 도시, 술의 도시였다. 일본인이 쓴 책이나 관광 안내 팸플릿에도 무학산과 합포만, 벚꽃과 술이 환상적으로 그려졌다. 마산 최초의 청주 양조장은 1904년에 일본 거류민에 의해 설립된 아즈마주조장이다. 이외에도 많은 주조장이 설립되었고, 일제 강점기하에 내수용에서 시작하여 만주와 중국 대륙에 수출용까지 생산하게 되었다. 군산 역시 쌀 수탈의 전초기지였다. 일제가 도로를 포장하고 철도를 개설하며 군산을 호남 최대의 상업 도시로 성장시킨 이유는 호남평야와 논산평야의 쌀을 수탈하기 위함이었고 1909년 조선 전체 쌀의 32.4퍼센트가 군산항을 통해 일본으로 빠져나갔다. 전북 지역에는 가장 많은 일본인 농장이 만들어졌고 주조장까지 운영하며 자연스럽게 양조 산업으로 이어졌다. 조선주조 군산분공장을 비롯하여 6개의 청주(사케)공장은 광복 이후에도 적산으로 분류되어 한국인의 손에 넘어갔으나 여전히 정종이라는 이름으로 인기리에 판매되었다. 한양이나 마산, 군산을 보면 시대별로 술의 도시는 존재했으나 그 역사와 문화적 배경은 사뭇 달랐음을 비교할 수 있다. 나라 잃은 설움도 모자라 설 자리마저 잃은 누룩 - 누룩, 개량 누룩 누룩의 역사는 매우 오래되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술에 대한 기록으로 볼 때 삼국 시대 이전부터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한다. 누룩 빚는 법은 《산가요록》을 비롯해 40여 권의 책에 소개되어 있다. 탁주, 약주, 소주의 체계가 완성된 조선 시대에는 누룩을 파는 상점이 매우 많았다. 술을 만드는 데 얼마나 많은 누룩이 사용되었는지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조선 말기에도 각 지역마다 특색 있는 소규모 누룩 제조장이 있었는데 이는 다양한 술이 생산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세금을 걷기 위해 조선의 자가 제조 및 판매용 누룩의 품질이 고르지 못하다는 이유를 들며 품질 향상을 위해 누룩 제조장을 통합함과 동시에 각 지방별로 누룩 제조 시설을 집약시켜 개량 누룩의 제조를 권장했다. 이로 인해 전국적으로 누룩 생산 공장이 감소하고 누룩의 다양성도 서서히 사라졌다. 이 책에서는 전통주의 중요한 원료인 그 많던 누룩은 다 어디로 갔는지에 대한 아쉬움과 한탄이 나오는 내용을 살펴볼 수 있다. 힘내라, 한국 술! 주세법상 전통주는 가.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 주류(무형문화재 술), 나. <식품산업진흥법>에 따라 주류부문의 식품명인이 제조하는 주류(식품명인 술), 다. <농업·농촌 및 식품산업 기본법>에 따라 농업인 또는 농업경영체에서 지역의 농산물을 이용해서 제조한 주류(지역특산주)로 정의한다. 시련과 역경을 겪으며 인고의 세월을 이겨낸 우리 술, 전통주 이제 전통주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생산자 들의 꾸준한 노력과 연구를 통한 제조 방법은 견해와 이미지마저 바꾸고 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술도 지속적으로 변화해 왔다. 드라마를 시작으로 한 ‘한류’는 전 세계로 뻗어 젊은 층을 중심으로 확대되고 있다. 이에 발맞춰 단절된 우리 술의 역사를 연구하고 조사해서 사라진 역사와 문화를 이어가고 새롭게 조명하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작성일 : 2023-01-20
이미지 데이터의 분석과 활용 (5)
생명과학 및 의학분야에서 활용   지난 호에서는 생산기술 및 품질보증분야에서 이미지의 촬영과 그 활용사례를 살펴보았다. 각종 디지털 이미지 촬영기기를 사용하여 가공부품의 이미지를 촬영하고 이미지 프로세싱 소프트웨어로 형상을 정량 측정하여 가공부품의 검사와 품질보증, 나아가서는 생산설비의 이상징후 등을 미리 파악하고 관리하는 용도로도 활용할 수 있음을 확인하였다. 이번 호에서는 생명과학 및 의학분야에서 이미지 프로세싱 소프트웨어의 활용사례에 관하여 소개할 예정이다. 생명과학 및 의학분야에서 연구대상은 생명활동을 하고 있는 것이 대부분이어서 시간과 더불어 그 상태가 변화하는 경우에 특정한 시각에서 상태 또는 시간의 변화에 따른 상태의 변화를 추적하여 해석해야 하는 특징이 있다.   ■ 유우식 | 웨이퍼마스터스(WaferMasters)의 사장 겸 CTO이다. 일본 교토대학 대학원과 미국 브라운대학교를 거쳐 미국 내 다수의 반도체 재료 및 생산설비분야 기업에서 반도체를 포함한 전자재료, 공정, 물성, 소재분석, 이미지 해석 및 프로그램 개발과 관련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메일 | woosik.yoo@wafermasters.com 홈페이지 | www.wafermasters.com   그림 1. 생명과학 및 의학분야의 연구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일러스트   생명과학, 의학이라는 용어가 확립되기 오래 전부터 인류는 삶의 지혜로서 생명과학의 여러 가지 현상을 활용하여 왔으며 민간요법 등을 통하여 의료활동을 실천하여 왔다. 생명과학 및 의학분야의 연구내용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일러스트를 <그림 1>에 표시하였다. 미생물 등의 생명현상의 관찰을 바탕으로 이루어지는 학문분야임을 현미경의 일러스트를 통해서도 짐작이 가능하다. 고대의 생명과학 또는 생명공학이라고 하면 효모를 이용한 발효기술을 이용하여 요구르트(Yogurt), 치즈(Cheese)와 같은 우유의 발효식품을 만들어 왔으며 빵, 맥주, 와인과 같은 곡물과 열매를 재료로 한 발효식품도 만들어 식품으로 사용하여 왔다. 육류의 발효식품으로는 소시지(Sausage), 햄(Ham), 살라미(Salami), 하몬(Jamón)과 같은 것을 들 수 있다. 우리민족도 김치, 젓갈, 간장, 고추장, 메주, 청국장, 식혜, 막걸리 등의 발효식품을 만들어 식생활에 활용해 왔다. 이러한 발효식품의 활용은 전세계적으로 어느 지역,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찾아볼 수 있는 식생활의 문화이기도 하다. <그림 2>에 대표적인 발효식품의 예를 들어보았다.   그림 2. 각종 발효식품의 예   고대에도 우량가축과 종자를 얻기 위하여 동물과 식물의 여러 가지 형질을 선별하고 교배하여 품종을 개량하는 육종법이 활용되어 왔다. 그러나 이러한 생명과학의 응용은 경험에 의한 것으로, 17세기에 현미경이 출현하기까지는 효모나 유산균과 같은 미생물의 존재는 알 수 없었다. 이번 호에서는 생명과학 및 의학분야에서 이미지 데이터의 분석과 활용이라는 주제에 맞추어 이 분야에서 취득되는 각종 이미지 데이터의 분석과 활용법에 관하여 살펴보고자 한다.  
작성일 : 2019-05-03
미생에서 인생을 듣다
쪽지… 비즈니스 워커 Chapter 29 ■ 류용효 : PTC코리아 Business Development Director로, 이전에는 PLM 제품 컨설팅 및 R&D 프로젝트를 주로 수행하였다. 한국실리콘그래픽스(SGI)에서 워크스테이션, Virtual Reality pre-sales 업무를, 성우오토모티브(현 다이모스)에서 EF소나타, XG 그랜저 시트설계를 수행한 바 있다.PLM blog : http://PLMIs.tistory.comE-mail : yryu@PTC.com 버텨라. 그리고 이겨라.희망은 본래 있다고도 할 수 없고, 없다고도 할 수 없다.그것은 마치 땅위에 난 길과 같다.지상에는 원래 길이 없었다.가는 사람이 많아지면 길이 되는 것이다.– 미생 마지막편 오차장 대사 우리집은 지상파만 나오는 관계로 지난 해 뜨겁게 달궜던 미생을 이제서야 전편을 다 보았다.전체 20편을 며칠사이 다 보고 나니 묘한 느낌이 들었다.우리 주변에 회사에서 흔히 있는 얘기들로 내가 혹은 친구가 겪어 봄직한 내용들이다.실제로 주인공인 장그래와 같이 현실에서 할 수 있다면 대단한 사람이다.거꾸로 볼 수 있는 생각… 즉 관점을 다르게 볼 수 있는 능력은 실로 대단하다.미래의 마케팅은 미래에 당연한 것들을 찾는 것이다. 언제… 지금….일요일 오후부터 10시간동안 연속 10편을 보고 나니, 30대의 뜨거웠던 열정이 다시 끓어 오르는 느낌을 받았다. 그동안 내면에 그리고 깊은 마음속에 숨겨두었던 그 열정을….다시 그 옛날 신입사원일 때로 잠시 돌아가 보았다. 나는 어떠했을까… 웃음이 나온다.세상 물정 모르는 아직 대학 졸업 전 취업을 하느라 학교와 회사생활을 왔다갔다 했었다.미생 드라마보다 더 많이 실수한 것 같다. ㅎㅎ예전이나 지금이나 확실한 것은 신입사원은 신입다워야 한다.케이팝(K-Pop) 오디션 프로그램에서도 그 얘기를했다.“우리는 기교를 잘 부리는 사람을 찾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노래를 부를 수 있는 사람을 찾는다”라고…제2, 제3의 미생이 나와도 재미 있을 것 같다.내가 몸 담았던 자동차 설계 분야도 그렇고, IT 얘기도 흥미로울 것 같다.다만 웃고 넘길 수 있는 것만은 아니라 씁쓸하다.무엇을 위해 우리가 일하고 있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목적에 집중. 시련은 셀프다. 인생 자체가 정치다. 우리는 어느새 과정을 거치지 않고 결과만 거저 얻으려고 집착하는 것은 아닐까.“No”라고 당당히 얘기하고 싶다.가끔씩 지인들이 찾아와서 묻곤 한다. 어떻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일까. 사실은 내가 그 대답을 할 수 있는 상황인지 나 자신도 잘 모른다.대답보다는 서로 살아가는 얘기를 서로 나눈다.목적에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뭔가에 집중하다 보면 시련이 오기 마련이다.그것은 스스로 극복을 해 나가야 한다. 방법이 따로 없다. 셀프에는 정확한 방향성이 없을 때가 많다. 스스로 하다보면 터득할 수 있을 것이다.인생 자체가 정치라는 말은 매일 우리는 수없이 많은 결정을 스스로 내리는 결과가 모여서 오늘의 내가 쓴 역사가 기록되는 의미라고 받아들이고 싶다.역사책은 훌륭한 일기장이 있다. 누구는 오프라인 일기장에 기록하고, 또 누구는 온라인 일기장에 기록한다. 난 개인적으로 온라인 일기장을 권하고 싶다. 손맛이 최고임을…. 다시 돌아가서….본인이 매사에 내리는 결정에는 오늘 회식 참석, 혹은 불참… 등 참으로 많다.해보지 않은 일을 오더로 받을 때 할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해 나의 결정은 내가 어떤 결정을 내리느냐도 중요하지만, 상사로부터 오더에 의해 일이 결정되기도 하고 말이다. 상사도 잘 만나야 한다는 거다. 또한 인생의 멘토는 꼭 만나야 한다.그런 의사결정 속에 나도 모르게 나의 인생도 정치라는 하나의 줄기를 잡고 세월의 흐름 속으로 흘러가면서 차곡차곡 나의 인생 정치 이력에 쌓인다. 일을 바르게 처리하는 방법은 한 가지뿐이지만 일을 바르게 보는데도 한 가지 방법뿐이다. 곧 일 전체를 보는 것이다. - 존 러스킨 일 전체를 보기 위해서는 하고 있는 일 하나하나에 집중해야 한다. 목적에 집중해야 하고, 실행과 경험이 필요하다. 에스파냐 태생의 로마 군인이자 농부였던 콜루멜라(Columella)는 농사와 소박한 삶에 대한 흥미를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농업과 그에 관련된 주제에 대한 저술을 많이 남겼는데, 이런 말을 남겼다.“일의 기량을 닦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실행과 경험이다“지금 우리에게 딱 필요한 말이다. 시련을 겪고 딛고 일어서야 훗날 전체를 볼 수 있을 것이다. 조바심을 내지 말고 조금씩…이전에 하던 방식대로 했는데도 찜찜할 때는 역발상이 필요할 수 있다.미생에서 문제가 있었던 프로젝트를 다시 시작할 때 모두가 부정적으로 볼 때 역발상으로 회사차원에서 수익관점으로 바라봐야 한다고 설득하는 장면이 인상적이다.새로운 발상, 접근이 때론 신선한 충격을 가져다준다. 그러면서 조직과 회사에 새로운 의욕과 희망을 불어 넣어준다. 일을 하라. 일에 쫓기지 말라 - 프랭클린 나는 아침 시간이 즐겁다. 우리 아버지도 새벽 4시면 일어나서 막걸리 한잔 하시고 논 한 바퀴 돌고 오셨다.물론 논에 가면 샘물에 비상식량을 항상 준비해 놓으셔서, 또 한잔 하시고 몸의 원기와 즐거운 마음 분위기를 만드신 후 집으로 오셨다. 그것을 40년 가까이 한결 같이 하셨다.자신이 맨 손으로 일궈 내신 땅에서 곡식이 익어가는 것을 보면서 얼마나 흐뭇하셨을까….유언에 따라 삼형제가 존재감에 따라 나눠서 매년 재산세를 내고 있다. 비록 얼마 안되는 땅이지만, 그 무엇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 내 아들에게 물려줄 생각이다. 다시 돌아와서… 매일 아침 업무 시작 전까지 거의 세 시간은 나만의 시간이다.볼륨을 높이고 음악을 들으며, 신나는 분위기에 오늘 제일 먼저 할 것을 처리한다.때론 업무를 처리할 때도 있고, 새로운 아이디어나 책을 보거나, 뭔가 집중하고자 하는 아이템이 대부분이다.뭔가에 빠져 볼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고맙고 행복하다. 영예의 정상은 미끄러운 곳이다. - 미첼 연말 시상식이 많은데, 연기 등 각종 대상 수상자들을 보면 해마다 연속으로 받기는 정말 어렵다.대상을 받으면 그 다음은 내려오는 일만 남았다.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야만 다음 해도 대상을 노려볼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변신을 해야 하는 것도 잊지 말고… 회사에서도 영예의 정상을 지키고자 발버둥치다 보면 불안한 자세를 계속 유지하다 탈이 날 수 있다.다시 초심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적어도 나에겐 그렇다.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다. - 바그너 여행은 언제든 하고 싶다.익숙히 잘 알고 있는 곳도 몇 년 사이 다시 가면 감회가 새롭다.토토가에 나온 90년대 스타들을 다시 보면 공통된 특징이 있다.20년이 지난 세월 동안 최소한 노래 부르는 것을 멈추지 않은 것과 변화된 모습으로 늘 우리 곁에 있었다는 것이다.MC, 작곡가, 교수, 뮤지컬 배우, 연기자 그리고 가수로도 활동하면서 자신의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들… 그래서 우리는 그렇게 또 그때 그 기분으로 열광하지 않았나 보다. 2월에는 주변을 좀 더 많이 돌아봤으면 한다.따뜻한 사람이 되자… 이월의 모토…가장 최상의 길은 없다. 많은 사람이 가고 있다면 그 길이 최상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변 사람들과 같이 가야 행복하다. 자신을 행복하게 하는 최고의 방법은 다른 사람의 기분이 좋아지도록 돕는것이다.– 마크 트웨인 기사 상세 내용은 PDF로 제공됩니다.
작성일 : 2015-01-30
쪽지… 디자인 워커 스토리텔링 Chapter 3 - IT 워커로서의 새로운 도전
파워블로거 류용효의 PLM 라이프 스토리 ■ 류용효 / PTC코리아 Business Development 이사로, 이전에는 PLM 제품 컨설팅 및 R&D 프로젝트를 주로 수행하였으며, 한국실리콘그래픽스(SGI)에서 워크스테이션, Virtual Reality pre-sales 업무를, 성우오토모티브(현 다이모스)에서 EF소나타, XG 그랜저 시트설계를 수행한 바 있다.■ PLM blog : http://PLMIs.tistory.com■ E-mail : yryu@PTC.com 고객에게 PLM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했는데 피드백으로 복잡하다, 어렵다 그리고 정말 해야 할 지 의문이 간다라는 답변을 들을 때면 내가 이해가 부족해서, 설명을 잘 못해서, 아니면 정말 PLM이 어려운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내에게 가끔 뭔가를 열심히 설명해 봅니다. 그러면 아내는 “뭐가 그렇게 복잡해. 좀 쉽게 설명해 줄 수 없어? 아직 당신이 회사에서 뭘 하는지 잘 모르겠어. 뭐 월급은 잘 들어오지만….” Chapter 10. 새로운 도전 IMF가 스쳐간 직후인 2000년 말. 아내에게 물었습니다. 우리 서울 갈까? 1년 365일 중 364일을 일하다시피 한 나를 옆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아내는 새로운 일을 좋아하는 내 성격을 알고는 한 마디로 결론을 내주더군요. “Why not” 그리고 “So What” 이 한 마디로 인하여 나에게 얽혀 있던 수많은 끈들이 풀리긴 했지만, 아내는 내가 앞으로 뭘 할 지 잘 모르는 눈치였습니다. 알아서 잘하겠지…. 사실, 그동안 나의 정체성인 설계를 벗어나 새로운 일을 하는 것은 새로운 모험이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무얼까. 무엇을 잘 할 수 있을까. 나는 무슨 일을 하고 싶은가. 이런 질문들을 끊임없이 나에게 던졌습니다. 그때 만일 내가 멘토와 같은 분들과 진지한 대화를 나누었다면, 아마 지금도 설계장이로 남아서 또 다른 삶을 살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존경하던 선배 분들을 회사로 모시고자 노력도 많이 했건만, 정작 내가 떠난다는 말을 차마 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지금까지 갈고 닦은 지식들을 한 순간에 내려놓고 다른 것을 한다는 것 자체가 몇 번이고 나를 다시 자꾸만 제자리에 멈추게 했습니다. 하지만 쏟아지는 설계의 문제점들과 시름하며, 희열과 좌절, 그리고 분노도 살짝 가지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나는 누굴 위해, 무엇을 위해서 이렇게 죽도록 일하고 있나. 한 마디로 도피처가 나에겐 서서히 필요해졌습니다. 일단 여기까지…. 우여곡절 끝에 설계란 작업의 종지부를 찍는 날이 다가왔고, 마지막 회식을 하던 날 나도 모르게 선배를 붙잡고 목 놓아 많이 울기도 했습니다. 미래의 두려움과 나의 청춘을 투자한 과거를 남겨 두고 떠나는 아쉬움 때문에 말이죠. Chapter 11. 과거는 잊어라 IT 회사로 첫발을 딛은 곳은 Cray, Indigo, Onyx 등 그래픽 슈퍼컴퓨터와 가상현실로 유명한 실리콘그래픽스(SGI)였습니다. 테헤란로에 위치한 SGI에 첫 출근하던 날,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IT 회사의 느낌과는 판이하게 달랐고, 외국계 회사라서 더욱더 그런 것 같았습니다. 직군 분류는 SE System Engineer. 즉 Pre-sales였습니다. 제조회사와는 다르게 개인적 업무수행을 중시하고, 누가 뭐 하는지 잘 모르겠고, 업무지시도 영문 메일로 각자에게 부여되기 때문에 첫 달은 영어와 전쟁하며 시간을 보냈습니다. 입사 2주가 지나갈 쯤 10% 감원 소식이 날아들었습니다. 이게 뭐야…. 집사람은 회사 왜 옮겼냐고 난리였고, 조금 지나서 그 당시 외국계 회사가 주로 감원하는 방식은 위로금 주면서 내보내던 시절이라 장기 근속하신 분들이 줄서서 기다린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지요. 지금 생각해 보면 정말 좋았던 시절이었죠. 지금은 아내도 많이 발전하여 저 보다 한발 앞서 나갑니다. 당시 저의 주된 업무는 카티아 사용자를 위한 SGI 워크스테이션 기술지원과 워크스테이션 Selling 지원이었습니다. 워크스테이션을 필요로 하는 니즈를 발굴하고 워크스테이션 OS 설치 및 튜닝, 카티아 V4 설치 및 성능테스트, 사용상의 오류들을 리포팅하고 문제를 해결해 주는 일이었지요. 현업에 있을 때는 시스템에 문제가 생기면 전화 한 통에 엔지니어가 달려와서 해결해 주곤 했는데, 이제 제가 그 역할을 하는 것이었죠. 사실 이제사 얘기 하지만, IBM 장비밖에 다루어 보지 않은 나로서는 SGI IRIX OS에 대한 이해도가 전혀 없었습니다. 거짓말 안 보태고 장비 외관 및 로고만 본 것이 전부이다 보니, 간 크게 일을 치른 대가는 밤마다 공부하느라 몸과 마음 고생으로 돌아왔습니다. NO WAY without real experience! 그러던 중 내가 제일 좋아하는 타 부서 후배 동료(류평수)의 조언을 듣고 귀가 번쩍 트였습니다. “형, 당분간 모든 데모 시스템의 OS를 모두 설치해 봐. 직접 해 보는 것이 최고의 선생님이야.” SGI IRIX는 OS CD가 10여장 구성 되어 있는데, 설치 중 질문에 Key in 하면서 선택하는 과정이 반복됩니다. 왜냐하면, 시스템 마다 다른 디바이스 사양별 옵션을 물어보는 것이죠. 한번, 두번, 세번째 OS 설치할 때까지는 주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알아야 할 것이 많아도 너무 많았죠. 그렇게 해서 장비 설치가 10번, 20번을 넘었을 무렵 자신감이란 것이 생겨나고, 나도 이제 여기서 버틸 수 있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자리를 빌어서 평수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합니다. Thank you Paul! 그렇게 좌충우돌 하면서 입사 한 달이 지나갈 즈음 문경새재로 회사 야유회를 가게 되었습니다. 주인장이 직접 담근 동동주와 파전이 주 메뉴였던 것으로 기억 납니다. 뭔지 잘 모르겠지만 그날 저는 광란의 밤을 보냈습니다. 막 입사했던 터라 막걸리를 주는 대로 먹었던 나는 나도 모르게 필름이 끊긴 상황에서 친한 팀 선배(찬석형)를 때리고 나서는 기절했다는 겁니다. 지금 생각해도 이유를 모르겠습니다. 많이 도와주고 가르쳐 줬는데 배은망덕하게 말이죠. 미안해 찬돌형? 저는 그날 막걸리 두 잔 이후로 전혀 기억이 나질 않았고, 아침에 일어나 보니 정말 엉망이 되었더군요. 이불이며 옷이며…. 그날 이후 유명세를 치뤄야 했습니다. 야 이제 찍혔어. 하지만, 덕분에 회사 동료들과 더욱더 가까워지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나의 첫 고객은 현대모비스 마북리 연구소. 그 당시 시스템 담당을 맡고 있던 정중환씨는 나에게는 잊지 못할 고객이었습니다. 지금은 뭘 하고 있는지 잘 모르지만, 그분은 매일매일 시스템을 사용하기 때문에 사실 저보다 더 많이 알았고, 문제점 재현을 위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온 문제인지 상세히 설명해 주었습니다. 그런 고객을 만난 건 신의 축복이었죠. 이때부터 자존심을 집에다 두고 오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어느덧 시간은 흘러 6개월이 가까웠을 즈음, 자그마한 목표가 생겼습니다. 지금의 나를 있게 한 계기가 되는, 과거를 잊게 할 그 무엇이 말입니다. Chapter 12. 하고 싶은 일에 열정을 쏟아라 당시 자동차 회사들은 카티아 V4에서 V5로 본격적인 검토가 진행되던 시기였고, V5로 DMU를 시작하던 때였습니다. 당시 생소하게 여겨졌던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을 접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나에게 다가왔고 그것은, BMW를 위해 개발했던 CATIA V5 Immersive Review란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이 프로그램은 현재 CATIAV 5 DMU VR기능으로 유사 탑재되었지만, 2001년 당시에는 SGI에서 Catia V5 DMU Navigator 기반으로 개발하였고, 유럽 일부 자동차회사에서 도입 적용 중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현대자동차가 그 당시 CAVE를 도입하면서 이 솔루션을 검토하기 시작했습니다. 그해 겨울, 우여골절 끝에 독일 엔지니어를 초청하게 되어 CAVE에 직접 시연을 해 보면서 가능성을 확인하기도 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전 일하던 곳으로 잠시나마 돌아갈 수 있는 설레임과, 카티아, 그리고 설계/디자인 데이터를 VR로 표현하는 것에서 내가 가지고 있던 설계 경험을 극대화 할 수 있어서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거의 모든 생각을 여기에 집중하고 어떻게 하면 이것을 잘 팔 수 있을지 많은 생각과 집착 수준으로 연구를 했었습니다. 하지만 시련은 나를 비켜가지 않았고, 어느새 나의 앞길을 가로 막았습니다. 아뿔싸… 솔루션의 성숙도와 가치로만 봐서는 최고였던 반면에, 판매 예상처는 너무 한정적이어서 판로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이후 본사로부터 유럽이외 지역에 판매 불가능이란 통보는 고객사에서 대실망으로 이어졌고 다른 VR 툴을 검토하게 되었습니다. 이것만 바로 보던 나로서는 하늘만 쳐다 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이 인생이구나. 현재는 용도별 다양한 툴을 이용하여 디자인 품평에 잘 활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현대자동차 CAVE 시스템 Presales 엔지니어로 전담 지원을 나가게 되었는데, CAVE 시스템 설치에서 TEST 과정을 보면서 나름대로 많은 것을 배우게 되었습니다. 시스템 오픈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시스템에 중대한 이슈가 생겼습니다. CAVE가 5면체에 영상을 뿌려주면 Immersive VR 기능으로 3차원 형상을 만들어 주는데 누른 띠가 두세 개 면으로 이어져서 나타나 관계자를 당혹하게 만들었습니다. 모두들 처음 보는 현상이라 긴급회의가 소집되었고, 하나하나 점검이 들어갔는데, 스크린, 프로젝터, 등등 SGI 영역을 제외한 나머지에서는 문제점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남은 거라곤 SGI ONYX 그래픽 슈퍼컴과 Performer 란 소프트웨어…. 이 시점에서 이 문제에 대한 문제점 파악을 위해 싱가폴에서 활동하는 VR 전문가를 불렀습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반지의 제왕’ 그래픽을 일부 만든 유명한 전문가였습니다. 전문가는 역시 달라도 너무 다른 것이 이 현상을 보고는 샘플예제인 황소 한 마리를 가지고 재현을 하였습니다. 와 정말 대단한 사람이다! 감탄사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더 큰 감탄사는 당시 스탠퍼드 대학을 졸업하고 VR 장비 업체에 근무하던 친구에게 문제가 재현된 파일을 보냈고, 이 친구는 스탠퍼드 대학내 VR 센터에서 문제 파일을 돌려 본 다음 원인 분석을 하였는데, 3주 지난 즈음 결국 원인을 알아냈습니다. 그 원인은 OpenGL 소스 결함으로 판명되었고, 너무나 간단한 텍스트 입력만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나니 정말 가슴이 뿌듯해졌습니다. 야호 원더풀 라이프! Chapter 13. IT 워커의 삶에 빠져 들다 가상현실(Virtual Reality)은 나의 삶을 180도 다르게 바꿔 놓았습니다. 열정이란 무엇인지 느끼게 해 주었고, 일 차원을 넘어서 취미생활로 발전되었습니다. 당시 SGI 서울사무실내에 VR 센터가 있었고, 고객사에 설치된 VR 장비들을 보면서 새로운 도전의식이 생겨났으며, 이후로 VR 렌더링을 만드는 것이 제일 재미있게 되었습니다. 이후 KAIST VR CAVE, 닛산(Nissan) VR 센터, EDS VR 센터, 포드(Ford) VR 센터를 방문하는 기회와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나의 경험은 훗날 닛산 디자인 센터에서 쟁쟁한 닛산 CAR 디자이너를 대상으로 Ford Mondeo 차량데이터를 이용하여 라이브 시연을 하게 되었고, 나에게는 잊을 수 없는 경험이 되었습니다. 또한 디트로이트 시 위에 위치한 Troy시에 있는 EDS VR 센터를 여러차례 방문하면서 GM에서 용역의뢰한 다양한 VR 시연들을 볼 수 있어서, 지식의 폭을 한층 넓혀 주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에어백 전개 프로그램, 모션 캡처 시뮬레이션, 1:1 형상 디스플레이를 이용한 디자인 Tape 드로잉…. 지금의 실리콘 밸리 마운틴뷰에 있는 구글 본사건물은 10년 전만 해도 SGI 본사 건물이었습니다. 톡특한 컬러로 칠해져 있는 22개 빌딩은 옛날 SGI의 영광을 말해주었죠. 그러다 경영악화로 건물들을 매각하더니 그 많던 건물들의 주인이 모두 다 바뀌었죠. 그 당시 본사 건물에서는 이집트 스핑크스, 피랑미드 등을 가상현실로 만들어서 직접 볼 수 있었습니다. 화려한 색감, 현실같은 느낌… 그리고 대형 VR 센터에서는 원격지 협업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습니다. Chapter 14. 자존심 아침에 출근할 때 근심과 자존심은 집에 두고 나와라. 대신 열정과 욕심은 가지고 나와라. 비즈니스의 기본은 Give and Take. 둘 중 하나가 성립이 안되는 것은 비즈니스라기 보다는 일방적인 것으로 삶에 크게 도움이 되질 않더군요. 현재 아는 지식은 언젠가는 과거로 바뀌며 항상 업데이트하지 않으면 한순간에 도태됩니다. 하지만 경험만은 언제나 내 머리, 마음속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내 주변에 있는 사람에게 잘 해 줘야 합니다. 가족 이외에 가장 많은 시간을 나누는 직장 동료야 말로 내가 가장 아껴야 하는 보물이죠. 이것이 자존심이지 않을까요. 자기를 사랑하고 남을 아끼는 마음을 생각하던 어느날 내가 누군가로부터 얻은 지식을 남들과 공유해야겠다는 생각이 마음 한구석에서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계기는 매주 내가 만나고 명함을 주고받은 분들께 어떻게 하면 나를 좀 더 오래 기억해 줄 수 있는 방법이 뭔가 하고 궁리 끝에 매주 벌어진 나의 이야기를 나와 한 번이라도 만난 인연이 닿았던 사람들에게 매주 월요일 아침에 받아 볼 수 있도록 메일을 보내보자라고 시작한 것이 지금의 월요편지의 시작이었습니다. 다음 호에는 월요편지에 얽힌 사연과 IT 워커 다음 이야기를 이어가겠습니다. 오늘도 출근해서 내가 뭔가를 할일 있다는 것과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음에 감사하며… 기사 상세 내용은 PDF로 제공됩니다.  
작성일 : 2012-11-30